(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조민아 김동임 인턴기자 = 남북간 전쟁에 모든 국력을 집중한 1953년, 일본은 이때를 기회로 삼아 독도에 불법 침입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고향 울릉도로 돌아온 홍순칠씨는 주민들의 생활 터전인 독도를 스스로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33명의 울릉도 청년은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해 3년간 '독도 수호'에 나섰습니다. 고종 황제가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공표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정일(1900년)이자 '독도의 날'인 10월25일을 맞아 이들의 의로운 길을 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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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지킨 33인의 청년들
1950년대, 남북 간 전쟁에 모든 국력을 집중하던 시기.
일본은 이때를 기회로 삼아 대한민국 고유 영토인 ‘독도’에 불법 침입을 시도합니다.
우리 어민들을 쫓아내는 일이 빈번했고,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내용의 푯말을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를 세밀하게 관리할 겨를이 없었죠.
'이 울릉도에도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의병이 있다는 것을 이때 보여주자!' - 홍순칠 수기 '이 땅이 뉘 땅인데!' 239쪽
당시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고향 울릉도로 돌아온 홍순칠씨는 주민들의 생활 터전인 독도를 '스스로' 수호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홍씨를 비롯한 33명의 울릉도 청년은 '독도의용수비대'라는 순수 민간조직을 자발적으로 결성하고, 1953년 4월 20일 외딴 무인도 '독도'에 상륙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국가의 지원도, 보수도 없이 말이죠.
홍씨는 가깝게 지내던 서예가 한진호씨에게 부탁해 독도 동도 정상 부근 암벽에 '한국령(韓國領)'이라는 글자를 새겼습니다. 이 글자는 지금도 독도가 한국의 땅임을 명시하고 있죠.
무엇보다 독도에 접근하려는 일본 함정을 몰아내 '독도 영토 주권'을 지켜냈는데요.
특히 독도에 상륙하려던 일본 어업실험장 실습선을 소리를 쳐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물리적 수단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접근하는 일본의 무장 순시선*을 경고 사격으로 저지하거나, 이를 무시하면 실제 총격으로 격퇴하기도 했습니다. 활동하는 동안 일본 순시선이나 함정을 여섯 차례나 격퇴했다고 하네요.
*순시선: 해상의 안전과 치안의 확보와 같은 임무를 띠고 바다를 돌아다니며 감독하는 배
이들의 활약으로 우리 어민은 안전하게 고기잡이 등 생업 유지를 계속할 수 있었고, 정부도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3년 뒤인 1956년, 독도수비대는 모든 업무를 국립 경찰에 넘기며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독도 사랑'은 멈추지 않았는데요. 독도 방파제 설치를 정부에 건의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독도 지키기 및 독도 가꾸기 운동을 계속했습니다.
63년 전, 평범한 청년들이 독도를 지켜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전투에 나섰습니다. 덕분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공표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정일(1900년 10월25일)이자 독도의 날인 오늘도 '독도'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영토로 동해에 우뚝 솟아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들이 지켜온 독도로 가서 일본 놈들에게 간섭 받지 않고 평화롭게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섬으로 키웁시다. 동지들, 우리 함께 독도로 가지 않으렵니까!' -홍순칠 대장 울릉군 향군 분회장 취임사
hye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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